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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19. 00:45

아낌없이 주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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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초기는 본인이 더 힘들다" 

사람의 습관은 치매도 이기는 것 같다.  어린 시절 현모양처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엄마는 집에서도 늘 화장을 하고 있었고 거울을 자주 보는 모습이 생각난다.  5남매를 키우면서 힘들 때가 많았을 텐데 찬송가와 가곡을 부르면서 집안 살림을 했었고 앉아서 쉬는 시간은 책과 신문 읽는 모습이 젊고 건강했을 때의 우리 엄마 모습이었다.  성악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노래를 매우 잘 불렀던 엄마는 젊은 시절 서울시 구 합창단 소프라노 단원이었고 교회에서도 성가대를 했었으며 엄마 나이 60 즈음 권사가 되었다.

 

 

엄마 권사 임명식 날

 

 

 우리 나이 때 부모님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전쟁과 일제시대를 겪는 고통과 가난이란 배고픔도 많이 있었다.  요즘과 다르게 기본 3~5명 이상 자식들을 낳으면서 산후조리를 잘 못하다 보니 허리, 무릎 등 퇴행성으로 여기저기 쑤시고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몸의 질병으로 통증도 고통스러울 텐데 뇌까지 노화가 따르면서 중증 치매는 가족들이 힘들겠지만 경증 치매환자들은 본인들이 더 힘들 것 같다.  치매 초기 때 가장 많이 하는 말들은
"내가 왜 이러지 기억이 안 나"
"내가 그랬어?"
"내가 언제?"
"얘야 내가 이상해 생각이 전혀 안나"
때론 멍 때리는 눈빛도 많아지고
평소와 다르게 구두쇠가 되거나 낭비를 하거나..
치매 초기 증상에 관한 여러 매체를 접해 보았지만 내가 지금 치매 4등급 엄마와 함께 생활하면서 알게 되는 건 자존심도 있고 주변 사람들, 자식들, 누가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를 대부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과거와 현재가 엉키고 기억에서 지워지는 부분도 있지만 24시간 온종일 치매는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 행동 등을 보면서 엄마는 친절하게 웃으면서 인사말도 잘하고 겸손하게 대해준다.  그렇지만 때론 속상한 마음이 들 때가 있어도 예전의 모습처럼 아무 말 안 하는 엄마지만 난 알 수 있다.  아침ㆍ저녁 기도하면서 생각나는 일들을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기도로 하나님께 마치 고자질하듯 어린아이처럼 "이러이러해서 속상해요"라는 기도를 듣게 된다.  그런 엄마를 보면 내 마음도 속상하고 엄마가 안쓰럽지만 하나님이 엄마를 토닥토닥해주시니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힘이 된다.

 

"엄마는 대상이다" 

재작년 교회에서 성경필사 해 놓은 노트가 있으면 제출하라고 하여 일산서구 모든 교회 중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서 엄마가 대표로 제출하여 참가상과 상금 3만 원을 받았다.  비록 참가상이라 할지라도 성경책 읽기, 쓰기가 엄마의 믿음이고 치매를 겪고 있으면서도 예전의 평소 모습처럼 생활화되어 있다.  손떨림으로 삐뚤삐뚤 글씨체도 엉망이고 받침도 틀리지만 엄마의 정성과 믿음이 담긴 필사 노트를 동영상으로 찍어 보관은 되어 있지만 필사 노트가 분실되어 너무 속상했다.

 

 

2018년 일산지방회 성경필사 대회 참가상

 

 

매 걸린 엄마는 키도 작고 얼굴에 검버섯도 많고 머리는 백발이며 파킨슨병까지 겹쳐서 몸도 구부정하지만 이 세상 그 어떤 엄마보다도 훌륭하고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엄마다.  우리 엄마는 인생을 잘 살아온 것 같다.  엄마를 수년 전 알고 지내다 거리가 멀리 떨어지고 서로 노인이다 보니 왕래가 없어도 늘 안부전화와 엄마가 치매라는 사실을 같이 아파해주고 기도해준다.  중간에서 내가 통역사 역할을 해주지만 엄마는 기억에서 이미 지워진 사람들도 있기에 감정이 없을 때도 있는데 톡으로 사진도 보내주고 안부전화는 계속된다.  가까운 곳에 사는 분은 엄마가 평소 좋아하는 떡과 갈비탕을 포장하여 현관문에 걸어 두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고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엄마를 존중해주는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치매부모와 여행은 불효다" 

치매 초기 때는 집에서 가까운 파주시 펜션을 찾아 낮엔 땡볕에서 수영을 하고 물장구를 치며 밤에는 모기향을 피워 놓고 바비큐에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퇴행성 관절로 수영과 아쿠아를 배워 물속에서의 몸놀림은 익숙하다.  그날도 비록 몸동작은 느리지만 둥실둥실 헤엄치고 수영을 잘했다.  불과 1년 6개월 전인데 이제는 집에서 욕조에도 못 들어간다. 

 

 

2018년 8월 경기도 파주시 펜션에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치매환자를 기억이 남아 있을 때 효도라고 생각하여 멀리 여행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자식에게는 추억이 되지만 치매환자는 몸이 피곤하고 낯선 곳에 머물면 기억력이 더 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감기가 걸리면 생활 리듬이 깨지면서 독한 감기약으로 치매 증상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것을 경험했다.  치매환자에게는 멀리 떠나는 여행보다는 친절한 말 한마디와 사랑을 표현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한다.

 

"눈치 못 챈 치매 증상"

4년 전 이사 온 지금 살고 있는 집은 A존과 B존으로 나누어져 있고 중간에 상가가 있는 복잡한 구조의 주상복합이라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올 때 엄마는 헷갈려했다.  치매 초기 증상과 파킨슨병이 시작되었는데 알지 못했었다.  아파트 내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지낼 기회가 있어 가족들은 마치 여행 온 것처럼 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식탁에 앉아 머리에 비닐봉지를 쓰고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지우는 엄마 모습이 낯설었다.  엄마에게 '엄마는 머리에 그게 뭐야 왜 비닐을 쓰고 있어?'라고 말하자 엄마는 나에게 화를 내면서 '너는 왜 엄마가 하는 일에 간섭이냐'면서 화를 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웃픈 하룻밤

 

 

 어느 날 설빙에서 평소에 엄마가 좋아하는 인절미 팥빙수를 주문했다.  맛있게 먹던 엄마가 갑자기 금액을 물으면서 테이블 위에 있는 영수증을 보면서 '너는 이런 걸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시키냐'면서 안 먹겠다고 화를 내며 나를 난감하게 했던 엄마.  더운 여름 팬티를 3장이나 입고 있었던 엄마.  그땐 이미 치매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엄마에게 미안하다.

 

"cctv로 엄마를 늘 지켜야 한다"

파킨슨병으로 자주 넘어지는 엄마이기에 침대 위에 cctv를 설치하여 동작이 감지되면 방으로 달려간다.  엄마가 잠든 시간 거실에서 휴대폰 속에 엄마를 보면 자다 말고 거울 보고 또 자다 말고 거울을 본다.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습관적인 거울 보는 행동.  주야간보호센터를 갈 때도 거울을 단 하루도 놓고 간 적이 없고 수시로 거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코를 골면서 깊은 수면 상태에서도 손거울을 들고 얼굴과 머리를 본다.  치매 증상으로 거울을 수시로 본다는 건 이해가 가는데 어떻게 자다 말고 거울을 볼까?  병원에서 엄마 주치의에게 물어보았지만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cctv 설치 (자면서도 거울 보는 거울공주)

 

 

오래전 기회가 있어서 몇 번 노인요양시설을 찾아가 치매어르신들에게 식사도 도와주고 대화도 하면서 봉사했던 일들이 기억난다.  젊어서부터 술을 좋아했던 할머니는 시설에서도 술을 달라고 소리 지를 때 사회복지사 및 요양보호사들이 식혜를 주면서 술이라고 하면 식혜를 마시고 취한다고 한다.  욕을 심하게 하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젊어서부터 욕을 잘했다고 한다.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할머니가 보였다.  젊어서 교사였고 평소 우리 엄마처럼 책을 많이 봤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우리 엄마도 치매이지만 평소 몸에 배어 있는 습관으로 언제나 책 읽는 모습과 거울 보는 모습은 보기 좋다.

사람들은 엄마에게 예쁜 치매라고 한다.  예쁜 치매에 걸린 엄마는 책을 읽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한다.

 

 

Posted by 천사보스